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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태실문화의 이해- (제3탄) 일제음모에 희생된 서삼릉 태실의 비극

by CareYou 2025.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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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릉 태실은 조선왕조의 중요한 문화유산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체계적인 파괴와 약탈로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서삼릉 태실의 역사적 의미와 일제에 의한 훼손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 서삼릉 태실의 역사적 의미

서삼릉(西三陵)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조선왕조의 왕릉 지역으로, 이곳에는 여러 왕과 왕비의 태실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이 지역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으로 여겨져 왕실의 태실 입지로 선호되었습니다.

서삼릉 태실군은 조선 중기와 후기 왕실 구성원들의 태실이 집중되어 있던 곳으로, 태실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었습니다. 

 

숙종, 영조, 정조 등 조선 후기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던 왕들과 그 자녀들의 태실이 안치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았습니다.

 

2. 서삼릉 태실 훼손의 실상

서삼릉 태실 훼손은 단순한 문화재 파괴를 넘어 조선왕조의 혈통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유산을 말살하려는 의도적인 행위였습니다. 조선총독부는 1928년 '태실 정리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서삼릉 태실을 포함한 전국의 태실을 대대적으로 파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삼릉 태실의 태항아리 약 30여 점이 발굴되어 창덕궁으로 강제 이전되었고, 일부는 일본으로 반출되었습니다. 태실 석물은 대부분 파괴되거나 분실되었으며, 태실비는 훼손되거나 제자리에서 옮겨졌습니다.

 

3. 바꿔치기 당한 태항아리들

일제강점기에 조선 왕실의 태실 대부분이 도굴되었으며, 특히 보물급 문화재였던 태를 담았던 백자들은 거의 모두 도난당했다. 월산대군 태실의 경우,  일본인이 수집한 태 항아리가 발견되어 일제의 도굴을 입증했다. 서삼릉으로 태실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항아리가 가짜로 바뀌었으며, 이왕직의 기록과 국립중앙박물관의 < 유리원판 목록집 Ⅲ >에 사진자료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은 일본 관료들이 주도한 도자기 도난 행위임 증명하고 있다.

 

 

4. 해방 이후의 서삼릉 태실

해방 이후에도 서삼릉 태실의 온전한 복원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원래의 위치와 구조에 대한 기록이 소실되었고, 태실 구성요소의 상당수가 분실되어 복원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현재 서삼릉 태실의 일부 유물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원래 위치에는 일부 태실비만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최근에는 서삼릉 태실에 대한 학술 조사와 복원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아픔 서린 서삼릉 태실



 

https://www.museum.go.kr/site/main/archive/report/archive_5754

 

유리원판 목록집 Ⅲ | 유리건판 자료집

국립중앙박물관,『유리원판 목록집 Ⅲ』은 7,584장의 소형 미등록 유리건판 1匣~584匣의 사진자료를 정리하였으며 원판번호, 제목, 소재, 비고의 항목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목차   序 ………

www.museum.go.kr

 

서삼릉 태실의 훼손은 일제강점기 문화재 약탈의 대표적 사례로, 우리 문화유산이 겪은 비극적 역사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잊혀진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